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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설악가를 부르다가/ 월간산 9월호    11-10 10:14
  조회 : 1895        
 

[등산 칼럼] 설악가를 부르다가

  • 글·사진 윤치술 한국트레킹학교장


  • 설악가를 부르다가

     

    위로가 된다는 것은 그 무엇인가가 내게 와 추억이 되는 것이다. 

    ♬굽이져 흰 띠 두른 능선 길 따라 달빛에 걸어가던 계곡의 여운을, 

    저 멀리 능선 위에 철쭉꽃 필 때에 너와나 다정하게 손잡고 걷던 길 내 어이 잊으리오. 

    꿈같은 산행을 잘 있어라 설악아 내 다시 오리니♬ 박용래 시인의 귀뚜라미 정강이 시리다는 백로白露다.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정훈이형 생각에 노래를 부르다보니 기억이 새로워진다.

     

    이 노래는 “설악가”다. 이정훈 형이 1970년 작곡하여 많은 산사람들이 불러서 닳고 헤진 곡이기도 하다. 

    그 해 달빛 고요한 천불동 계곡을 홀로 걷다가 죽음의 계곡 쪽을 바라보며 격정이 끌어 올랐고 

    달빛에 반사되는 설능을 바라보다가 즉흥적인 감정으로 흥얼대다 보니 어느덧 하나의 노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 때의 감정을 가슴에 안고 돌아 와 흰 띠를 두른듯한 달빛 아래의 산상을 떠올리며 기타로 선율을 그린 후 

    피아노로 음을 확인하고 악보를 완성했는데 이로서 설악가가 탄생했던 것이다.

     

    당시 이정훈 형은 이 노래를 1절인 겨울만 노래했는데 중동고 산악부 허재형씨가 2절인 봄의 가사를 만들어 붙였다. 

    아무튼 이곡은 이렇게 정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었고 어느덧 산을 위한, 

    산을 향한 노래로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때로는 거침없이 빠르게, 한없이 늘어터지게 부르는 설악가는 

    산 꾼들의 가슴에 혁혁한 수를 놓으며 자리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생명력 있는 현실이다. 

    이에 노래비는 2016년 8월23일 설악산 자락 속초 국립산악 박물관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면 그 옛날 인수산장 앞에서 나에게 위로를 건네주시던 그 낮은 목소리 지금도 기억합니다. 

    나의 우쿨렐레와 하모니카에 장단에 맞춰 아찔하게 노래 부르시던 그 모습 기억합니다. 

    후배 앞니를 부러뜨려 성남의 치과를 찾아갔을 때 후배 다루는 기술이 거칠다며 껄껄대던 그 모습 지금도 기억합니다. 

    지금은 다 지나간 일들 내게 남겨준 아름다운 일들 차마 기억합니다. 아, 세월은 흘러갔어도 내 가슴에 영원히 남아있는 

    그 애잔함을 사랑하고 또 기억합니다.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노래하듯 침잠沈潛한 가을 능선위에 그 음률이 널브러지고 

    나는 오늘도 설악의 한 귀퉁이를 맴돌고 있다. 가을빛 공룡의 등뼈 위에서 멋들어진 용아의 장성에서

    씩씩한 천화대 릿지의 능선에서 이 노래를 부르련다. 투병 중에 정훈이형이 쓴 글을 옮겨본다.

    “추석이 되니 내년 추석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산책을 가면 돌멩이나 풀뿌리에도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었다. 세상은 아름다운 것이기에.”